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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의 리뷰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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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리뷰 기억은 살아 있고, 그 기억은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0.JTBC 드라마 주인공 이해숙(김혜자)은 천국 지원센터의 안내를 받아, 세상을 떠난 남편 고낙준(손석구)을 천국에서 재회한다. 해숙 자신은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남편 낙준은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1.드라마의 미덕은 초반 3화까지 이어진다. 4화 이후,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지옥이 등장하며, 마치 영화 ‘신과함께’를 연상시키는 비주얼, 더불어 극이 후반부로 향할수록 천국센터장(천호진)의 존재는 극의 톤을 급격히 변화시킨다.2.단순히 연출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아니다. 결말부 11화, 12화는 관객에게 지나치게 친절해지려는 시도가 보인다. 그간 감춰둔 주연들의 감정을 말로, 설정으로, 클로즈업으로 ‘설명’하면서 외려 시청자들의..
드라마 악연 리뷰 (약스포일러, 매우 주관적인 감상 주의) 넷플릭스 드라마 ‘악연‘은 서막부터 결말까지 차갑고 집요한 이야기이다. 총 여섯 인물이 주연으로 등장하며, 어떻게 살아도 결국 서로를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지독한 악연. ‘악연’은 그들 사이 흐르는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6부작의 이야기로 보여준다.0.‘악연’의 인물들은, 서로 무관해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과거 사건을 매듭처럼 공유하고 있다. 과거의 학교폭력, 성폭력, 방관, 복수, 선택, 침묵. 6명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단순하게 얽힌 게 아니라, 서로를 망가뜨린 채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 아닌 ‘악연’이라 지칭한다.1.김범준(박해수)은 우연히 살인을 목격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선택으로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외과의사 이주연(신민아)은 ..
영화 버드맨 리뷰 (결말 포함, 약스포일러 주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출연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스톤개봉일(국내기준) 2015년 3월 5일상영시간 119분실체없는 명성, 무대 위를 부유하는 한 영혼‘버드맨’은 단순히 한 배우의 몰락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해당 영화는 명성의 실체를 물으며,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정신과 육체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존재에 대한 초상를 기린다.1.영화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되어 마치 관객에게 단순한 ‘영상물’을 보여주는 것 만이 아닌 영화/영화 내 연극 스태프의 입장을 ‘관음하듯’ 흘러간다. 극 내내 카메라 앵글은 무대 뒤 복도, 대기실, 옥상, 그리고 다시 무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주인공 리건 톰슨을 따라간다. 그 길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쫓는 심리의 미..
폭싹 속았수다 리뷰 (결말포함, 스포일러 주의) 가장이란 무쇠를 부숴버린 겨울에 대하여.1. 사실 1,2부 리뷰 작성 당시에도 기재했던 말이지만 공개 전 부터 워낙 말도 탈도 많았던 지라 감상을 망설였던 드라마입니다.특히나 3부부터는 모배우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고, 그의 얼굴을 온전히 ‘박충섭’ 이라는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자, 드라마 속 인물들의 감정선이 스크린을 타고 전해졌고, 어느 순간 저는 더 이상 ‘충섭’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저는, 8화부터 마지막 16화까지 쭉 관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식의 곁엔, 항상 애순이 있었죠. 금명이도, 어느덧 훌쩍 자라버린 은명이도. 아이러니하게도, ‘학씨’ 아저씨 부상길도요.2.이 드라마는 요즈음 드라마 중 드물..
김사과 작가 미나 리뷰 (스포일러 주의) 열등감과 선망 사이, 절제되지 못한 감정이 택한 파국1.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 는 처음 읽었을 땐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살인, 붕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혹은 무감정한 태도를 취하는 등장인물들, 무척 충격적인 결말. 청소년 소설이 이토록 불편하고, 도덕적 기준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지. 그 당시 나는 그저 ‘자극적’ 이란 단어 하나로 이 소설을 단정 지었다.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미나’는 불현듯 다시 나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내 기억에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지를.2. ‘살인’은 열등감 해소의 은유일 수 있는가김사과 작가의 소설 ‘미나’의 결말에서 수정은 친구 미나를 살해한다. 소설의 제목이자 ..
웹툰 안나래 작가 ‘하자인간’ 리뷰 (결말 포함, 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결함과 심리의 딜레마1.웹툰 하자인간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감정과 사회적 편견, 상처 입은 이들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가해자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심리적 딜레마, 그리고 ‘하자’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한다.2.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피해자, 수현과 창수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수현이 창수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살인을 계획해놓고선 막상 실행을 망설이는 장면들이다.보통 미디어에선 피해를 입은 인물이 가해자를 증오하고 복수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하자인간은 보다 현실적인 심리를 그린다. 사람 대 사람의 유대 관계란 생각만치 단순한 원한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미움과 의존, 죄책감과 두려움이 얽히면..
폭싹 속았수다 리뷰 - 6화까지만 해도 무척 좋았는데 말이죠. (스포일러 주의) 과거의 기억을 되짚고, 감정을 뒤흔드는 제주 사계절의 이야기1. 저번 주말, 남자친구와 폭싹 속았수다를 보았습니다. 워낙 말도 탈도 많은 드라마라 별 기대 안 했건만, 홀린듯이 앉은 자리서 6화까지 내리 봤네요. 그리고 남은 2화를 저 혼자 감상하고 나서 이 리뷰를 적습니다.2. 서정적인 제주와 시대적 현실’폭싹 속았수다‘는 제목부터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의미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입니다.1부(1~4화)는 196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시인이 되고 싶은 여성 오애순(아이유)과 그녀를 묵묵히 사랑하는 양관식(박보검)의 삶을 그립니다.드라마는 제주도의 사계절을 배경으로 하며,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물들의 감정선을 아름답게 조화시킵니다. 특히, 눈 여겨할..
영화 비밀은 없다 리뷰 (약스포 주의) 감독 이경미출연 손예진, 김주혁개봉일 2016년 6월 23일상영시간 102분 (1시간 42분)침묵 속에서 폭발하는 절망과 분노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실종된 딸(민진)을 찾는 연홍의 심리와, 그 이면에 감춰진 정치의 추악함을 여실히 그려낸 심리 스릴러물이다.얼핏 보기엔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물 혹은 정치물 같지만, 이 영화의 장르를 심리 스릴러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장 가까운 이’ 의 배신과 위선,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한 인간이 무너져가는 과정이 러닝타임 내내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1. 어쩌면 불편한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대하는 태도이다.영화는 손예진이 연기한 연홍이 실종된 딸(민진)을 찾는 과정에서 점차 광기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영화 청설(국내 리메이크작) 리뷰 (스포주의, 결말포함) 감독 조선호원작 청펀펀 영화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개봉일 2024년 10월 3일상영시간 109분 (약 1시간 48분)1. 사실 저는 극호인 영화가 아닌 이상 리뷰를 작성하는 편이 아닙니다. 저한텐 불호인 영화가 누군가에겐 극호인 영화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는 뭐랄까? 호라고 하기엔... 어딘가 거슬리고, 그렇다고 불호라고 딱 잘라 말 하기엔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고. 좀 애매해요. 음. 뭐. 네.2. 한국판 청설은 2009년 대만 영화 청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원작이 가진 감성적인 스토리와 청각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잘 살렸을까? 싶으면서도, 개봉 전 트레일러 영상들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아 이 영화 만큼은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이런저런 일..
(결국 ott 공개 전 까지 못 참고 작성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스포주의, 결말포함) 개봉일(국내기준) 2025년 2월 12일감독 브래디 코베출연 에이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상영시간 215분 (약 3시간 34분 가량)**해당 리뷰는 결말 포함 수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꼭 영화 감상 후 읽어주길 요청 드립니다.자본주의의 천박함에 무너진 인간, 허나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의 영속성.1. 브루탈리즘 건축과 주인공 라즐로의 삶의 유사성.건축은 그의 인생을 투시하는 거울이었다.‘브루탈리스트’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단순한 건축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건축은 주인공 라즐로의 삶을 은유하는 중요 장치로 작동한다. 브루탈리즘 건축은 노출 콘크리트를 강조하며, 기능성을 중시하는 투박하고 거친 스타일이 특징이다. 루즐로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는 겉 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