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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스포주의, 결말포함.)

천일염의 하루 2025. 2. 27. 16:48

감독, 각본 코랄리 파르자
주연 데미무어, 마거릿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봉일자 2024년 12월 11일
상영시간 141분

그래서 엘리자수를 만든게 정녕 하비일까요, 엘리자베스 본인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일까요?


1.

솔직히 말하면, 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라고만 표현하기엔 영 부족하다고 느낀다.

첫 관람 때는 엘리자베스의 외모 집착과 자기혐오가 낯설지 않아 처음 극장에서 오열하듯 울었고, 이후 VOD 구입 후 재관람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영화라 계속 찾아보게 됐다.

그저 고어물로 치부하기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렬하고, 그렇다고 단순한 여성의 외모 강박증을 다룬 영화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무척이나 무겁다.

영화의 핵심은 여성의 외모 강박증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아니라, ‘자기혐오’와 ‘사회적 시선’이 한 사람을 파멸까지 몰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2.


방송사 사장 하비에게, ‘여자는 50살이 되면 모든게 끝난다‘ 며 해고 통보를 받은,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박힐 만큼 대중에게 사랑받던 여배우였지만 이젠 ’한 물 간 스타‘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사용하여, 젊고 아름다운 클론를 생성한다.

클론인 수로 지내는 기간 동안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대중의 사랑을 유지하는 데서 안정을 찾지만, 그 과정서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가며 살아남으려 하다 끝내 무너지고, 영화 종막엔 괴물(엘리자수)로 붕괴된다.

3.


결말부 피분수 장면은 첫 관람때 불필요한 그로테스크함을 느꼈지만, 몇번 보고 나니 일평생 그를 착취하기만 했던 하비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복수하는 장면으로 다가와 어쩐지 통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또다시 ‘방송’으로 소비되는 것이 무척 씁쓸하다.

엘리자베스는 일평생 본체일 적에도, 클론(수)일 적에도, 괴물(엘리자수)로 붕괴될 적 마저 대중과 미디어 산업에서 소비 당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사람들은 그의 외면이 달라질 때 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를 소비하는 모습을 모인다.

허나, 셋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1.

개인적으로 영화 내 잔인했던 장면은 피가 난무하거나, 치아가 빠지고 등이 갈라지는 등의 고어 장면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가 점점 최악의 선택을 하면서 자신을 잃어갈 때,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멸시하며 짐을 건네는 순간,

그리고 수의 피트니스 쇼였다.

운동을 가장한 선정적인 퍼포먼스를 보면서, 대중은 그녀를 철저히 소비의 대상으로 투시할 뿐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제법 기괴하게 느껴진다.

4.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외모나 자기혐오에 대한 내 생각도 제법 바뀌었다.

예전엔 ‘예쁘고 마르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 믿었고, 10년 넘게 섭식장애에 시달리며 온갖 성형 수술 및 보톡스 등 미용 관련 시술 후기를 찾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고작 25살이 되었을 땐, 내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교하며 ‘가장 잘 팔리는 나이’ 라고 위로하는 지인을 앞에 두고 ‘그렇지만 난 이제 20대 초반이 아니니 더 이상 어린 여자가 아니다.’ 라며 우울해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를 본 후론 더 이상 ‘소비 당하는 대상’으로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에 휘둘리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다.

극 중 데미무어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관객도 이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충분히 아름답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고작 50 밖에 안 된 나이에. 왜 저리 자학하며, 스스로를 망치고, 매번 최악의 선택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겠지.

거기서부터 관객들은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현실을 마주한다. 본인의 자기혐오를 타인은 그리 바라보고 있겠구나, 하는.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다.

5.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고어물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이미지, 자기혐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을 소비하고 버리는지를 다룬 영화다.

50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아마 한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강압적인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거다.

6. 명대사

“REMEMBER YOU ARE ONE"

“모든 것이 완벽히 제 자리에 있군.“

"참 길죠? 일주일 말이예요.“
"당신도 시작 됐나요? 당신을 먹어 치우는 거?“

”CONTROL YOURSELF!"

“못하겠어...난 여전히 네가 필요해.”
“얼른 준비해야지. 너 엄청 사랑받을거야. 오늘은 너의 중요한 날이잖아.”

"pretty girls always smile!"
언제쯤 이 장면에서 화가 안 날까

"No! Don't be scared! It's still me! It's me!"
"It's me! Just me! I'm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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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한국포스터... 굳이 그랬어야 했나요? 미친 영화라는 건 부정 못하지만 포스터 문구에 굳이 넣었어야 했는진 아직도 의문입니다.

여담2.

찬란은 키링 굿즈 시사회 한 번만 더 해주세요. 그리고 소지섭님 좋은 영화 많이 수입해줘서 감사합니다.


여담3.

극 중 데미 무어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헐리웃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박힌 스타인데, 정작 데미 무어 본인은 ‘한 때 예뻤던 배우’로만 불리우다 서브스턴스를 통하여 처음으로 연기를 통한 상을 수상하고 있다는게 퍽 아이러니하네요.

서브스턴스 이후 그가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데미 무어란 배우를 사랑하게 된 거 같거든요. 부디 모든 영화제 여우주연상 다 쓸어가세요.

여담4.

엘리자수의 등장이 늦었을 뿐, 사실상 엘리자베스의 내면은 도입부 화장실 장면부터 (혹은 이 전부터) 엘리자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그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여담 4-1.

이 영화가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님에도, 5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점에서 이 나라는 잠재적 엘리자수가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지인에게 나는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한다니 ‘그럴만도 하지, 니 이야기인데.’ 하는데서 특히 그렇게 느꼈고,

남성 관객들 중에선 확실히 마거릿 퀄리가 예쁘긴 하네, 엘리자베스가 다 늙어서 욕심 부리다 저리 된 거 아니냐 (지팔지꼰이다 이거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당신들 141분 동안 나랑 같은 영화 본 거 맞나? 싶던...

뭐 당장 부모님이랑 티비라도 같이 보면 쟤는 왜 갈수록 얼굴이 망가지냐, 쟤도 이제 다 늙었다 BGM처럼 말하곤 하고요. (저희집만 이런가요.)

이렇게 보면, 우리 사는 현실이 서브스턴스 같습니다.

여담 5.

여하튼 영화 보는 걸 좋아해도 감히 ’사랑하는 영화’ 라고 제 입으로 말하는 영화는 몇 편 없는데. 이 영화는 정말 사랑합니다.

중반부쯤 영화 속에 들어 가 엘리자베스를 구해주고 싶다, 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스크린 안에 존재하고 나는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갑갑했어요.

리뷰를 찾아보니 저처럼 엘리자베스를 구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걸 보면, 엘리자베스가 우리에게 많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긴 한가봅니다.

참, 미디어에서 말하는 럽유어셀프가 이렇게 허황된 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