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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 구의 증명 리뷰

천일염의 하루 2025. 3. 7. 12:51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에 대하여

1.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 단순한 성장소설, 가족 서사가 아니라, ‘존재’와 ‘유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존재가 어떻게 증명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 존재를 기억하는지를 이야기한다.

2. 구와 담, 사랑을 초월한 유대를 상징하는 인물들.

주인공 ‘구’와 ‘담’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나 연인의 감정을 넘어선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이 둘은 단순한 가족, 연인, 친구같은 서술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그 모든 관계를 초월한, 어떠한 유대감을 지닌 인물들이다.

구와 담,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한 사람도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듯한 그들의 관계는, 이야기가 막을 내린 후에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담은 항상 구를 보호하고 싶어 했고, 구 또한 담이 있어야만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구에게 너무나 가혹했고,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사채업자에게 구타치사 당하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담은 구의 묻거나, 태우는 대신 시체를 먹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구를 자신 안에 남기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카니발리즘이 아니라, 구를 끝까지 세상에게서 부정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담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2. 제목 ‘구의 증명’의  의미.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제목은 2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구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의미: 구는 항상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자기 자신조차도 존재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고, 결국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죽음마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채업자에 의한 구타치사로 삶을 마감한다.

    2. 담이 구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의미: 구가 사망한 후, 담은 구가 생전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의 시신을 먹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구는 담의 일부가 되어 담과 평생 공생할 수 있게 되었다. 담의 행위는 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절박한 몸짓이다.

이처럼 구의 증명은 구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담)이 한 존재(구)를 증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망한 구의 시체를 먹는 담의 행동은 단순한 카니발리니즘 요소가 아닌,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3. 성경적 이미지와 상징성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 또한 흥미롭다. ‘구’, ‘담’, ‘노마’라는 이름은 마치 성경 속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킨다.

’구‘ 는 성경에선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이지만, 소설 속 구는 정서적으로 무척 결핍된 존재이다.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그의 삶이 제법 반어적으로 느껴진다.

‘담’은 벽이라는 뜻을 가지면서도, 성경에선 보호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극 중 내내 담은 구를 보호하려 했던 존재로 그려진다.

’노마’는 방랑자 같은 느낌을 주는데, 소설 속에서 이 인물은 구와 담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결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동시에, 노마의 죽음은 구와 담에게 큰 상실감을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징들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4.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구와 담의 관계는 독자에게 하여금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세지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은 타인에게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이 책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과 인간의 유대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그 여운이,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증명’ 그 자체가 아닌가. 무심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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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저는 이 책을 볼 때 마다 가수 프롬의 ‘서로의 조각’ 노래가 생각납니다. 오리지널 버전 보다는 어쿠스틱 버전으로요. 가삿말이 꼭 구와 담이 주고 받는 말들 같아요. (작가님께선 9와 숫자들 창세기 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전 이상하게 이 노래만 찾게 되네요.)

서로의 조각 가사도 첨부하고 갑니다.

https://youtu.be/qe5tqZvZXHk?si=ZOABpLBc1vJBKZzY

마주 잡은 손을 기억해
나의 의미는 너에게만 있어
바라보는 눈빛 그 아래
너의 의미는 나에게만 있어
너의 모든 것은 다 나에게로 와
까만 오늘의 닿은 의미가 돼
너의 모든 것은 다 나에게로 와
빈 어딘가의 한 조각이 되어
우리만의 성을 지을래
슬픈 눈물은 다 마실게
날 위한 창을 내줄래
매일 문을 나서는 그댈 바라보게
방안 가득 널 위한 노래
나의 의미는 너에게만 있어
오고 가는 수많은 표정 속에
너의 의미는 나에게만 있어
우연뿐인 매일매일에 널 위해 추는 춤
그리워질 내일 내일에 널 위해 그리는 꿈
너의 모든 것은 다 나에게로 와
까만 오늘의 닿은 의미가 돼
너의 모든 것은 다 나에게로 와
빈 어딘가의 한 조각이 되어
우리만의 성을 지을래
슬픈 눈물은 다 마실게
날 위한 창을 내줄래
매일 문을 나서는 그댈 바라보게
마주 잡은 손을 기억해
나의 의미는 너에게만 있어
바라보는 눈빛 그 아래
너의 의미는 나에게만 있어
방안 가득 널 위한 노래
나의 의미는 너에게만 있어
오고 가는 수많은 표정 속에
너의 의미는 나에게만 있어


여담2. 개정판 표지보다 개정 전 오리지널 표지를 더 선호합니다. (그래서 사진도 개정 전 표지로 첨부했습니다.) 나무배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의 일러스트가 이 책의 내용을 함축해둔 것 같아서요. 개정판 표지는 예쁘긴 한데, 이 책의 내용과 어울리나? 그건 사실 잘 모르겠어요.